금오산 법성사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행하라.
스스로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불교신행의 첫걸음

Home > 법성사의 향기 > 불교신행의 첫걸음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인생에 대한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있다.

  • 작성자법성사
  • 작성일2019-07-26 11:26:06
  • 조회수101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인생에 대한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있다.  그래서 불교를 지혜의 종교라고도 한다.

기도는 왜 그리고 어떻게 하는가?

1. 기도(祈禱)를 해야 하는 이유

사람의 한평생 가운데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란 지극히 적다. 우선 머리 속이 갖가지 생각들로 혼란스럽고, 말과 행동으로 지은 업들이 '나'의 앞길을 막고 있으니 마음먹은 대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걱정들.... 자기 걱정, 가족 걱정, 남에 대한 걱정 속에서 한평생을 보내기 마련이요, 돈과 명예와 자존심 때문에 괴로워하고 괴로움을 당하다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에 대한 애착과 모든 욕심을 남김없이 비우고 사는 것 또한 쉽지가 않다. 오랜 세월 동안 무엇인가를 추구하면서 살아온 버릇 때문에 비우기가 더욱 어려운 것이다.
이와 같이 비우지도 못하고 내 마음대로도 되지 않을 때, 그리고 주위 사람의 도움으로도 '나'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그냥 가만히 앉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 오히려 현재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업(業)만큼은 녹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뿐 아니라 꼭 이루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바로 그때 필요한 것이 기도다. 부처님이나 큰 힘을 지닌 불,보살님께서 세운 행원력(行願力:고통 받는 중생을 남김없이 구제하겠다)에 의지하여 간절히 소원을 비는 기도법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2. 기도인의 자세

우리 불자들은 기도를 매우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불교의 기도는 '마음을 비우고 해야 한다' 또는 '자기 자신을 위한 소원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등의 말을 자주 듣기까지 한다.
물론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다급한 소원이 있는데 어떻게 마음을 비우고 기도할 수 있겠는가? 또, 일체 중생을 위한 기도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나'의 해탈과 관련이 있으니, 따지고 보면 자신을 위하지 않는 기도가 이 세상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므로 기도를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쉽게 말해, 기도는 비는 것이다. 도와 달라고 비는 것이 기도이다.
어떤 사람이든 힘이 있고 자신이 있을 때는 신심(信心), 곧 자기 자신의 의지로써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나약하고 자신이 없을 때는 의지할 것이 있어야 한다. 곧 신앙(信仰)이 필요한 것이다.
기도는 신앙이다. 신심이 아니라 신앙인 것이다. 따라서 기도를 할 때는 매달려야 한다. 내 마음대로도 남의 도움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불,보살님의 불가사의한 힘에 의지하여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매달리는 것이 기도인 것이다.

1) 간절한 기도

기도를 할 때는 지극한 마음, 간절한 마음 하나면 족하다. 복잡한 형식이나 고차원적인 생각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간절하게 불,보살님을 생각하고 지극한 마음을 전하면 되는 것이다. 더 쉽게 이야기해 보자.
간절하다는 것은 마음을 한결 같이 갖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소원이 있기 마련이고, 그 소원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뭉쳐야 한다.
"잘 되게 하소서. 잘 되게 해주소서. 잘 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마음을 하나로 모아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소원을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신라의 원효 스님께서는 기도하는 법을 이야기하면서, "절하는 무릎이 얼음처럼 시려도 불 생각을 하지 말고, 주린 창자가 끊어져도 먹을 생각을 하지 말지어다."라고 하셨다.
이것은 얼어 죽든 굶어 죽든 상관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다. 밥 생각, 불 생각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라는 것이다.
기도를 하다 보면 처음 얼마 동안은 마음이 잘 모이지만, 조금 지나면 갖가지 잡념들이 더욱 많이 일어나게 된다. 몸이 고단하다는 생각, 내가 올바른 방법으로 기도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 공연한 기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 이러한 생각들이 기도를 망쳐 버린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억지로 없애려 한다고 하여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억지로 없애려고 하면 더욱더 일어나는 것이 번뇌 망상의 속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회의가 생기고 잡념이 일어나는 고비를 만나면, 거듭 소원을 곧게 세우고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일념삼매(一念三昧)에 빠져들게 되고, 잠깐이라도 깊은 기도 삼매에 빠져들면 불보살의 가피력을 입어 소원을 남김없이 성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요행수를 바라지 말라

둘째는 요행수를 바라지 말고 자력(自力)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불자들 중에는 '기도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런데 그 까닭이 기도 법을 몰라서라기보다는 마음의 자세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곧 기도를 하면서 요행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수십 년을 절에 다닌 신도조차 요행수를 바라며 기도하는 경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기도에는 요행수가 통하지 않는다.
태양은 어느 곳에나 평등하게 빛을 비춘다. 그리고 그림자는 그 빛을 받는 물체의 모습과 비례한다. 같은 태양 빛을 받는 사물일지라도 형상이 바르면 그림자가 바르고, 형상이 길면 그림자가 길며, 형상이 짧으면 그림자가 짧은 법이다. 이처럼 불,보살님의 광명정대한 자비는 언제나 중생들의 정성과 함께 할 뿐, 요행을 바라는 마음과는 결코 함께 하는 법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중생들은 요행수를 바라고 기도를 하는 일이 많다. 심지어 "측신(厠神)에게 기도하면 재수가 좋다"는 말을 들으면 변소에까지 밥을 가져가서 기도를 하고, '아무개가 족집게'라는 소문을 들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그곳을 찾아가 점을 보기까지 한다.
사실은 신(神)이 내린 용한 점쟁이라 할지라도 '내'가 아는 것 이상은 알지 못한다. 하다못해 '내'가 잠재의식 속에서라도 알고 있는 것이라야지, 점을 보러 가는 '내'가 전혀 모르는 것은 알아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그들이 '나'도 전혀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그냥 넘겨짚어서 하는 말일뿐이다. 그러므로 헛된 것에 의지하여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불자라면 불,보살님의 광명정대한 자비에 의지하여 자기의 정성을 다 바치는 자력(自力)의 기도를 해야만 한다.

3. 가피(加被)의 종류  

기도는 맹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소원이 있으므로 기도를 하는 것이고, 기도를 하는 이상 반드시 불,보살님의 가피를 입어 소원을 성취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불,보살님은 어떻게 가피를 보여주는 것일까?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한 이래 수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여 가피를 입은 사례들을 유형별로 나누면 크게 세 종류로 분류될 수 있다.
현실에서 바로 가피를 입어 소원이 성취되는 현증가피(顯證加被), 꿈을 통하여 소원이 이루어질 것을 예시하는 몽중가피(夢中加被), 언제나 은근하게 보호를 받는 명훈가피(冥勳加被)가 그것이다. 이들 삼종가피(三種加被) 중, 다급한 일을 당한 사람이 기도를 할 때는 현증가피 또는 몽중가피를 입는 경우가 많고, 평소에 안락과 행복을 원하는 사람은 명훈가피를 입어 평안한 삶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다.

4. 하루 중의 기도 시간  

1) 임종 전과 잠들기 직전이 중요하다.

사람의 한 평생 가운데 제일 중요한 순간이 언제인가? 죽기 직전이 가장 중요하다. 죽기 직전에 어떤 마음을 품고 죽느냐에 따라 내생이 달라지는 것이다. 임종에 다다랐을 때 "내생에는 참선 정진하며 살아야지!"하는 원력을 강하게 세우면, 그 다음 생까지 그 힘이 그대로 전달되어 일평생 도를 닦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나무아미타불'을 일념으로 외우면 그 사람의 마음이 무량한 빛, 무량한 수명의 아미타불과 함께 하여 극락왕생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반대로 강한 원한을 품고 죽으면 한을 품은 떠돌이 귀신이 되거나, 다음 생 전체를 복수를 위하여 소모해 버리는 허망한 일생을 보내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면 자기가 지나온 생애를 되돌아보면서 내생의 행복을 위해 용서할 것은 용서하고, 부족했던 점이나 못 다한 것이 있으면 원을 세우고 기도하면서 다음 생을 준비할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원을 세우면 영혼이 몸을 떠날 때 그 원의 싹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택하여 태어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원력이 새로운 삶의 기둥이 되어 주는 것이다.
그럼 하루 중에는 언제가 가장 중요한 시간인가? 잠들기 직전의 5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2)왜 잠들기 직전의 3분이 가장 중요한가?

깨어 있는 동안 우리는 의식의 세계에서 활동한다. 그러나 잠이 들면 잠재의식의 세계로 들어갔다가 지극히 고요한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모든 의식적 활동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재의식 또는 무의식의 조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의 세계를 보다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잘 개발해야 한다.
만약 잠자기 5분전부터 아주 나쁜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면, 그는 악몽에 시달리게 되고 깨어나서도 매우 좋지 않은 기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대로 잠들기 5분전에 관세음보살을 일념으로 부르고 자면 편안한 수면을 이룰 수 있을 뿐 아니라. 깨어나서도 곧바로 '관세음보살'을 찾는 맑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참선(명상)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잠들기 전에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또렷이 잡고 잠들면 깨어날 때까지 화두가 그대로 살아있게 된다.
곧 관세음보살이나 화두가 수면과 함께 의식에서 잠재의식→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갔다가, 잠이 깰 때 무의식→잠재의식→의식의 세계로 다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잠자기 전의 5분 집중은 3시간, 5시간, 7시간의 집중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원리를 기도 법에 적용시키면 매우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Total8 [ page1/1 ]
No.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읽는중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인생에 대한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있다. 2019.07.26 법성사 2019.07.26 101
7 불교는 믿음과 수행을 겸비한 종교다. 2019.07.26 법성사 2019.07.26 57
6 불교는 모든 인간이 부처가 되기 위한 종교이다. 2019.07.26 법성사 2019.07.26 41
5 불교는 수행을 통해 인간의 정신과 삶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는 가르침이다. 2019.07.26 법성사 2019.07.26 29
4 불교는 믿음과 수행을 겸비한 종교다. 2019.07.26 법성사 2019.07.26 96
3 불교는 수행을 통해 인간의 정신과 삶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는 가르침이다. 2019.07.26 법성사 2019.07.26 45
2 불교는 믿음과 수행을 겸비한 종교다. 2019.07.26 법성사 2019.07.26 44
1 불교는 모든 인간이 부처가 되기 위한 종교이다. 2019.07.26 법성사 2019.07.26 268
처음이전1 다음마지막